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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엔진을 켜둘게

VERSE 2011/07/14 03:32 Posted by capi

검정치마의 두 번째 앨범 <걱정마 자기야, 그냥 수영하는 중이야>(Don't You Worry Baby / I'm Only Swimming)를 들으면서 논문을 읽다가, 갑자기 연쇄적인 음악연상작용이 일어난 끝에 오랜만에 델리스파이스를 들었다. <D>는 빈곤한 용돈을 털어 처음 샀던 델리스파이스의 CD였던 터라 좀 애착이 있다. 이런 개인적인 추억을 좀 걷어내고 생각해도, <슬프지만 진실...>을 제외하면 가장 좋은 앨범이었다고 생각함. 델리스파이스는 전성기에도 참 이상한 밴드였(다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으로 잘 된 앨범엔 확 튀는 곡이 별로 없었고 그다지 앨범으로선 훌륭하지 않은 앨범엔 미친듯이 좋은 곡이 들어있는 식의 불균형이 좀 있는 편이었다. <슬프지만 진실...>은 전자, <D>는 후자. 그러나 <D>에는 아직도 델리스파이스 라이브 셋리스트의 사골 오브 사골들이 몇 곡이나 들어있으니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차우차우"라는 불후의 명곡을 제하면 대부분 아쉬웠던) 데뷔작보다 <D>를 더 자주 듣게 된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가장 좋아한다. 이 노래와 만난지 벌써 10년이 다 되었다는 게 좀 놀라운데, 10년 전 처음 들었을 때 노트에 "항상 듣던 스미스"의 스미스가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다"는 그 스미스일 게 틀림없다고 들뜬 글귀를 쓰고, 아 가사 완전 좋다고 몇 번이나 메모를 했던 게 아직 기억이 나는 탓이다. 그 때와 지금의 느낌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 사이에 달라진 건, 어느 순간 이 "항상 엔진을 켜둘게"라는 노래 자체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 바쳐진 노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는 "너의 차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난 절대로, 절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며 "오늘밤 날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이 들려올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의 노래이고, "이대로 10톤 트럭이 우리를 들이받는다 해도 너와 함께라면 그건 기쁨"이란 마음을 공유하는 연인이 갈라서 버린 뒤 남은 이야기다.



검정치마는 며칠 더 질펀하게 들은 뒤에 처음 쓴 메모들을 다시 봐야겠음. <201>보다는 확실히 일관성있는 앨범인데 사실 의외로 정서적 일관성이라는 게 좋은 앨범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더라. <가장 보통의 존재>처럼 그게 핵심이고 또 그 일관됨이 있어서 독보적일 수 있는 앨범도 있는 법이지만.

<걱정마 자기야, 그냥 수영하는 중이야>의 첫 느낌은 첫 트랙부터 중반부까지의 흡입력은 (그 방식은 다를지언정) 결코 <201>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후반부의 집중력은 좀 떨어지는 듯 하다는 정도. 하지만 "Love Shine"에서 "외아들", "International Love Song"으로 (가사에서나, 분위기에서나 탁월하게) 이어지는 독보적인 흐름은 <201>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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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미덕

VERSE 2011/06/15 03:17 Posted by capi
장기하는 내가 본 한국말로 노래하는 가수 중에 가장 가사가 잘 들리는 사람들 중 하나다. 사실 그 정도도 아니고 이제까지 들어본 중에 제일 잘 들리는 사람이 맞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가사 전달력을 갖고 있음. 작년 지산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 정도로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되다니 이건 거의 크라잉넛의 환골탈태와 비슷한 수준의 발전이구나 싶은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신곡이라고 두 곡을 들려주는데 놀랍게도 가사가 뭔지 하나도 안 놓치고 알아듣겠는 거다. 맘 먹고 가사를 딸 수도 있었을 정도였는데 들으면서 문득 장기하는 이 타고난 장기를 음악에 정말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가사 쓰는 스타일과 더 이상 잘 어울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실은 1집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예상보다 좀 늘어지는 느낌이라 그랬을 수도 있고, 대체로 가사도 멜로디도 정규앨범에 싣기엔 조금 아쉽다 싶었던 한두 트랙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덕택에 전체적으로 모든 트랙에 제법 박한 평가를 내리던 중에 생각을 고쳐먹게 된 게 "별일 없이 산다"에서 가사의 느낌을 확 살려내는 특유의 억양이었고, 하나를 더 들자면 이런 식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데 미미들의 코러스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대단히 나중에야) 알아챘던 일이다. 아니 뭐 그건 그랬다는 거고, 하고 싶은 말은 2집의 첫인상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나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이들이 검정치마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가장 기다렸을)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앨범에 대한 진지한 감상은 조금 오래 들은 뒤로 보류해 두는 게 좋겠다. 

그래도 덧붙이는 짧은 감상들: "TV를 봤네"는 지산에서 들었을 때는 좀 늘어질 뿐더러 많이 다듬어야 할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앨범에 실린 버전은 (솔직히 별로 손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마무지하게 놀랍게도) 꽤 좋은 트랙이 되었다.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는 지산에서 들었을 때도 괜찮고 여전히 괜찮지만 사실 내가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더 기대하는 건 이런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 걸 잘 못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취향상. 취향을 빼고 생각해도 처음의 인트로는 솔까말 좀 과히 유치하다 싶고, 이어지는 꽤 전통적인 리프는 나쁘지 않지만 "뭘 그렇게 놀래"에 못 미치는 느낌이다. "TV를 봤네"를 비롯해서 "그 때 그 노래"와 "마냥 걷는다"까지 1집에 비해 훨씬 나아진 발라드들은 마음에 든다.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장기하 목소리는 사실 상당히 미성인데다 감수성도 넘치는지라ㅋㅋ 마지막으로 갈수록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역행하는 것 같은 내 감수성에 가장 좋았던 트랙은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였음. 이 트랙의 미덕이 뭔지는 솔직히 모르겠음. "깊은 밤 전화번호부"는 가사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들지만 진짜 옛날 그룹사운드 냄새 풍기는 후반부는 마음에 쏙 든다. 근데 이거 라이브 때 하려면 죽이게 힘들겠다...

덧/새 글 쓰기 귀찮아서 계속 이어 씀. Pains of Being Pure at Heart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다. 첫 번째 앨범은 그야말로 "이 앨범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네..." 였는데 두 번째 앨범도 대략 비슷하다. 부담없고 상큼하고 무난하고 멜로디 하나는 죽여주는 걸로 따지면 Tahiti80도 비슷했지만(음악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말은 절대 아님), 내 맘대로 장담하건대 Tahiti80보다 훨-씬 덜 질리고 훨-씬 잘 짜여진 소리를 들려주는 밴드다. 안타깝게도 두드러지게 좋은 트랙이 없다는 건 단점. Tahiti80은 "1000 TImes"라는 공전의 히트곡이자 불후의 명곡이 있잖아. 생각만 해도 듣고 싶어지는 노래다. 

더해서 아직까지도 내가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바인즈도 새 앨범을...냈는데... 진짜 한결같다. 근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에도 나쁘지 않다. 아마 이번에도 혹평이 쏟아지고 앨범은 안 팔릴텐데! 흐극흑흑흐극흑흑...... 이제와 고백하는 거지만 난 가끔 앨범 자켓 사진, 혹은 홍보용 잡지/포스터에서 껄렁대며 서 있는 퀭한 눈의 찌질이들을 보고 반해서 들어볼 때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러고 나면 개중에 몇몇은 진짜로 좋아지게 된다.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잘 말 안하고 다녔던 얘기지만 스미스도 큐어도 다 이런 계기로 들어보게 되었음! 근데 진짜 완전 좋았다는 거! 물론 이건 말 안해도 당연한 거지만 스웨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브렛은 너무 잘생겼음! 난 세상에 저렇게 생긴 인간이 목소리도 저렇게 좋고 가사도 간지나게 쓰다니 인생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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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민라가 가고 싶다

VERSE 2011/04/17 15:47 Posted by capi
딱 토요일만 하루 다녀오면 되는데. 일요일은 별로 내키지 않는 라인업이지만 토요일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딱 좋은 라인업이거늘 못 갈 것 같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의욕이 뚝뚝 떨어짐. 와 한 달 내내 이렇게 살고 봄놀이도 한 번 못 가다니...물론 MGMT는 잘 보고 왔고, 그래서 당장 공연을 못 보면 가출해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그치만. 어. 어어어. 어음. 사실 날짜로 보면 그나마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직후 다음 폭풍이 오기 전에 잠깐 쉴 수 있는 시기이니 딱 절묘하고 고양까지 혼자 못 갈 것도 없고 뷰민라는 티켓값도 싸고(망할 내한공연. 지산이 그 정도 받는 건 이해하지만 내한은 사실 좀 너무함. 거의 2년 단위로 근 만원씩은 오르는 듯. 물가상승률 고려해드립니다만 아니 좀...). 10cm랑 검정치마(랑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정토마스도 좀 보고 싶긴 함 그 목소리 오래 안 들었더니 이상하게 그리운 것이, 개인적으로 메리이모는 앨범보다 라이브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함 보는 재미ㅋㅋ도 있고) 보고 싶은 건데, 둘 다 라이브가 죽여주는 팀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검정치마는 분명 조휴일이 2집 수록곡을 하나는 해 줄 것 같아서 궁금한 탓이고, 10cm는 공연을 본 적도 없는데다가 마침 앨범도 냈으니까. 아 근데 몰라. 조휴일 보고 싶다. 조휴일 완전 귀여움. 얼른 앨범을 냈으면 이렇게 궁금할 일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망할.

201에 뻑간 게 처음엔 오래 안 갈 줄 알았더랬는데 이렇게 시름시름 앓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야말로 더럽게 라이브 못하던 시절의 안티프리즈. 근데 안티프리즈는 진짜 좀 미친듯. 아 너무 좋아.



"죽겠네"는 이상하게 녹음상태 엉망진창인 이 EP버전이 훨씬 좋다. (딴소리지만 "앵콜요청금지"도.) 요샌 인디씬에서 나오는 정규앨범도 이상하게 깔끔하고 이쁘고 프로페셔널한 게 기분이 이상한데, 이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 처음에만 나올 수 있는 미숙한 "테이크-원"(from 벡) 파워가 분명 있다고 믿는 편이라서 이게 가끔 아쉽기도 함. 그리고 또 급 검정치마로 되돌아가면 확실히 201에는 이게 있었다고 생각함. 라이브를 미칠듯이 못해서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이상하게 앨범이 세련되었으면서도 뭘 모르는 애가 막 녹음한 것 같은 거친 풍미가 있었고 그게 오히려 더 좋게 들렸다는 면에서? 항상 그렇지만 너무 깔끔하면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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