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의 두 번째 앨범 <걱정마 자기야, 그냥 수영하는 중이야>(Don't You Worry Baby / I'm Only Swimming)를 들으면서 논문을 읽다가, 갑자기 연쇄적인 음악연상작용이 일어난 끝에 오랜만에 델리스파이스를 들었다. <D>는 빈곤한 용돈을 털어 처음 샀던 델리스파이스의 CD였던 터라 좀 애착이 있다. 이런 개인적인 추억을 좀 걷어내고 생각해도, <슬프지만 진실...>을 제외하면 가장 좋은 앨범이었다고 생각함. 델리스파이스는 전성기에도 참 이상한 밴드였(다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으로 잘 된 앨범엔 확 튀는 곡이 별로 없었고 그다지 앨범으로선 훌륭하지 않은 앨범엔 미친듯이 좋은 곡이 들어있는 식의 불균형이 좀 있는 편이었다. <슬프지만 진실...>은 전자, <D>는 후자. 그러나 <D>에는 아직도 델리스파이스 라이브 셋리스트의 사골 오브 사골들이 몇 곡이나 들어있으니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차우차우"라는 불후의 명곡을 제하면 대부분 아쉬웠던) 데뷔작보다 <D>를 더 자주 듣게 된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가장 좋아한다. 이 노래와 만난지 벌써 10년이 다 되었다는 게 좀 놀라운데, 10년 전 처음 들었을 때 노트에 "항상 듣던 스미스"의 스미스가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다"는 그 스미스일 게 틀림없다고 들뜬 글귀를 쓰고, 아 가사 완전 좋다고 몇 번이나 메모를 했던 게 아직 기억이 나는 탓이다. 그 때와 지금의 느낌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 사이에 달라진 건, 어느 순간 이 "항상 엔진을 켜둘게"라는 노래 자체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 바쳐진 노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는 "너의 차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난 절대로, 절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며 "오늘밤 날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이 들려올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의 노래이고, "이대로 10톤 트럭이 우리를 들이받는다 해도 너와 함께라면 그건 기쁨"이란 마음을 공유하는 연인이 갈라서 버린 뒤 남은 이야기다.
검정치마는 며칠 더 질펀하게 들은 뒤에 처음 쓴 메모들을 다시 봐야겠음. <201>보다는 확실히 일관성있는 앨범인데 사실 의외로 정서적 일관성이라는 게 좋은 앨범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더라. <가장 보통의 존재>처럼 그게 핵심이고 또 그 일관됨이 있어서 독보적일 수 있는 앨범도 있는 법이지만.
<걱정마 자기야, 그냥 수영하는 중이야>의 첫 느낌은 첫 트랙부터 중반부까지의 흡입력은 (그 방식은 다를지언정) 결코 <201>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후반부의 집중력은 좀 떨어지는 듯 하다는 정도. 하지만 "Love Shine"에서 "외아들", "International Love Song"으로 (가사에서나, 분위기에서나 탁월하게) 이어지는 독보적인 흐름은 <201>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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