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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14:17
「왜곡된 서술로부터 거리두기: 『포스터스 박사』와 『암흑의 핵심』의 비교를 통해」

<서론>
  『포스터스 박사』(Doctor Faustus)와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는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려던 인간이 변모하고 타락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상을 대변하는 인물이 각각 포스터스(Faustus)와 커츠(Kurtz)이다. 초월적인 것을 이루려는 이상뿐만 아니라 뛰어난 언변, 물질적인 탐욕에 이르기까지 두 인물은 많은 개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범한 금기시된 행위는 이들에게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상보다는 타락한 욕망에 탐닉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고뇌하면서도 끝내 소유하게 된 힘을 포기하지 못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의 비극이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하던 이상과 욕망이 당대의 욕망을 충실히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커츠의 경우, 비문명에 대한 계몽은 그가 추구하는 이념이면서 동시에 당대의 제국주의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가장 큰 기치 중 하나였다. 원주민들에게서 집요하게 상아를 수탈하는 커츠의 물질적 욕망이 식민지 자원에 대한 제국주의의 욕망과 일치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스터스 역시 당대에 태동하고 있던 인본주의적 욕망과 이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이성으로 만물을 이해하고 소유하며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득한 르네상스 지식인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극중 포스터스가 지식, 재화, 물질, 사랑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은 그가 타락하거나 변절한 지식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욕망이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본질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콩고 밀림의 암흑(darkness)과 공명한 내면의 암흑(darkness)이 커츠의 욕망을 좌절케 하듯이, 포스터스의 욕망도 마법을 포함한 외부 요인들의 압력과 스스로의 절망에 의해 좌절되고야 만다. 결국 이들의 비극은 타락한 이상으로 인해 몰락하는 한 개인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거대한 욕망이 내부적 결함과 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좌초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커츠와 포스터스 두 인물을 바라보는 작중 서술자들의 시선이다. 특히 『암흑의 핵심』의 말로우(Marlowe)는 커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로서 오히려 커츠 자신보다도 더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자는 오직 말로우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의존하여 커츠를 판단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커츠의 사상뿐만 아니라 말로우의 사상도 함께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말로우는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서구인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제국주의 이념을 대변하는 커츠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계몽 이념에 대한 말로우의 사상을 논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편 말로우에 비해 비중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포스터스 박사』의 코러스(Chorus) 역시 비슷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극에서 유리한 코러스의 전통적인 역할은 서시(prologue)와 폐막사(epilogue), 그리고 막간마다 등장하여 극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논평하는 것이며, 『포스터스 박사』에서도 그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포스터스에 대한 코러스의 논평이 종교적인 입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코러스의 입장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인본주의 욕망에 대항하는 기존의 종교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말하자면 말로우와 코러스 두 서술자가 그들의 서술 대상인 커츠와 포스터스와는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 입장 차이에 의해 서술 대상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말로우는 그 자신의 사상에 기반하여, 또 코러스는 당대의 전통적인 사상에 기반하여 커츠와 포스터스에 대한 왜곡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왜곡된 해석은 그 자체로 편향된 해석이기 때문에, 게다가 때로는 대상에 대한 명료한 판단을 불가능케 하는 혼란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암흑의 핵심』에는 작품 내부에 이러한 비판적 시선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서술자가 존재한다. 말로우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 중 하나이며 작품 전체를 감싸며 조망하고 있는 1인칭 서술자 '나'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말로우의 이야기를 듣기 전과 듣고 난 후 1인칭 화자가 보이는 극명한 태도의 변화는 작품의 말미에 여운을 남기며 말로우의 해석에 대한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커츠에 대한 거리두기와 더불어 말로우에 대한 거리두기는 유의미한 일이기에, 같은 맥락에서 포스터스의 비극을 논평하는 코러스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거리두기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포스터스 박사』 내에서 이러한 거리두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의는 『암흑의 핵심』의 거리두기를 『포스터스 박사』에 적용해 보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더불어 이러한 거리두기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두 작품을 영웅적 좌절을 다룬 비극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일 수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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